“비구들이여, 형색에 대한 갈애는 무상하고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소리에 대한 갈애는…냄새에 대한 갈애는…맛에 대한 갈애는…감촉에 대한 갈애는 무상하고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법에 대한 갈애는 무상하고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상윳따 니까야> 제3권, 갈애 경(S25:8) 중에서)
햅틱스 기술이 가져올 변화
햅틱스 기술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시작하면 우리 일상은 다시 한번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주로 시각이나 청각을 통해 세상의 다양한 정보를 얻고 학습하며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았다면, 이제는 촉감이 더해지는 초감각의 세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인간의 감각은 개별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특히 시각은 촉각과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햅틱스로 인해 메타버스에서 시각과 청각으로 느끼는 대상의 구체적 모습에 촉감이 더해지면서 그 실재감과 몰입감이 한층 더 커진다. 지난 코로나 펜데믹 기간 모두가 집안에서 격리된 채로 살아가면서, 온라인 쇼핑을 하면서 그 필요성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운동하려는 신발을 구입하려고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직접 신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모니터에서 보여주는 디자인이나 치수와 같은 정보만으로는 선뜻 구매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원거리 촉각 인식 기술이 적용된다면 집안에서 매장에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가상 데이터로 구현된 신발을 신어봄으로써 내 발에 꽉 끼는지 아니면 헐거운지를 피부로 느끼면서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한다고 해보자. 다양한 그림이나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으면 관람객들은 멀리서 바라보면서 눈으로만 그것을 감상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전시 공간에 햅틱 기술로 가상현실을 구현한다면, 각 전시 작품들의 부피와 질감 등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는 듯이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고려청자나 팔만대장경판을 직접 손으로 쓰다듬어 보거나, 판각의 깊이나 글자의 정교함을 손끝으로 더듬어 볼 수 있다면 정말 멋진 경험이 될 것이다. 또한 다양한 방식의 게임, 자동차, 항공기 시뮬레이터 또는 의료용 시뮬레이터의 성능도 크게 향상할 것이다.
여기서 ‘시뮬레이터(simulator)’는 체험형 혹은 상호작용형 시뮬레이터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가 어떤 행위를 하면, 그 힘과 질감 혹은 열감, 냉감 등을 실시간으로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해서 시뮬레이터에 전달하고 그 시뮬레이터는 그 신호를 받아서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을 구현해 낼 수 있게 된다. 자동차를 운전하다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노면의 거칠기와 브레이크의 뻑뻑함, 브레이크 패달을 통해 발목에 전해지는 압력 등이 모두 구현되는 것이다. 특히 의료용 시뮬레이터에 이 기술이 제대로 적용된다면, 서울에서 제주도에 있는 환자를 실시간 원격수술하는 과정에서 의사가 마치 직접 수술 환자의 장기나 만지는 느낌 그대로를 구현하게 될 수 있다. 이처럼 햅틱스 기술은 우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대인관계, 혹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
첨단기술을 관세음보살의 천수 천안과 같은 자비행을 위한 방편으로 쓰일지 단순히 감각 능력의 확장을 통한 쾌락과 욕망 해소에만 활용될지는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 이제는 인간의 감각질마저도 인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고, 또 왜곡할 수도 있는 세상이다. 온통 자극적인 즐길 거리로 가득 찬 세상에서 때로는 감각기관을 잠시 쉬게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촉감 속에서 연기(緣起)를 보다
햅틱스 기술은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 세계에서 인간에 신체 감각을 부여할 수 있는 기술이다. 즉 피부에 압력이나 진동을 가해 각각의 물체가 가진 고유한 감촉과 반응을 디지털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이 ‘햅틱(haptic)’이라는 말은 ‘만지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haptestha’에서 기원한다. 즉 피부를 통해 보고, 눈을 통해 만진다는 의미다. 인간은 감각기관인 몸, 귀, 코, 혀, 몸을 통해 세상을 감지한다. 인간 중에서도 어떤 이는 유독 시각이 발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후각이 발달한 사람, 청각이 발달한 사람 등 제각각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불행하게도 특정 감각기관이 덜 발달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 이해와는 달리 인간의 오감은 서로 분리되어있는 감각 장치가 아니다. 그 작용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서로 의존하면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은 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분리된 방식이 아니라 ‘호용(互用)’ 즉 관세음보살님처럼 귀로 볼 수 있고, 눈으로 들을 수 있다. 우리의 육근에서 비롯된 ‘육경(六境)’은 소리와 냄새가 다르듯 각각 서로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나에게 느껴지는 주관적인 감각들이 별개지만, 사실은 찰나에 생겨나고, 찰나에 사라지는 ‘식(識)’의 흐름이 만들어낸 일종의 착각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예를 들면, 이 햅틱스 기술도 촉감이라는 것이 어떤 고정적이고 독립적인 감각이라기보다는 다른 감각기관과 서로 연결되고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고 있다. 그렇다면 촉감 또한 가상의 피부 혹은 가상의 디지털 데이터 결합을 통해 역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생각도 가능해진다.
철학적 좀비
예전에 텔레비전 쇼프로그램에서 재밌는 게임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상자 속에 다양한 물건을 집어넣고, 출연자가 안대를 껴서 볼 수 없도록 한 다음 손의 촉감만으로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맞히는 게임이다. 어떤 경우는 짓궃게도 살아있는 뱀장어나 물컹거리면서 손에 달라붙는 낙지를 넣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 나서 그것을 만진 출연자가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웃음 짓게 만든다. 출연자의 눈을 가리고 오직 촉감에만 의지해서 사물을 파악하는 경우에 벌어지는 상황은 천태만상이다. 바로 그때 사람마다 각양각색의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사람마다 ‘감각질(qualia)’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감각질’이란 저마다의 감각을 통해서 느껴지는 것 혹은 느낀다는 그 자체를 말한다.
즉 감각질은 객관적 개념이 아니라 철저히 주관적으로 파악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뱀장어는 무섭고 사나운 뱀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낙지는 그저 보양식품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저마다 이전에 삶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에 비추어서 세상을 보고 느끼는 것이다. 불교의 유식 전통에서 잘 알려진 비유 중에서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물이더라도 천인들의 시각에서는 그 물이 보석으로 장엄한 연못으로 보이고, 인간에게는 단지 마시는 물로 보이고, 아귀들에게는 피 혹은 고름으로 보이고, 물고기들에게는 머물고 살아가는 공간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같은 물이더라도 각자의 업력에 따른 ‘감각질’이 다른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겉으로는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을 따라 하더라도 이 주관적인 감각질을 통해 정말 느끼고 있는지가 문제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이 서로 앞서와 같은 게임을 한다고 해보자. 인간은 당연히 낙지를 손으로 만졌을 때, 감각질에 따라 징그럽다고 느끼거나 아니면 맛있겠다고 생각하면서 군침을 흘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놀라는 표정이나 몸짓을 취할 수는 있겠지만 과연 정말 주관적으로 특정한 감정이나 정서를 느껴지는지는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제삼자의 눈에는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이 서로 이른바 ‘촉감 게임’을 즐기고 있으며, 누가 사람이고 누가 인공지능 로봇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바로 이 경우 인간을 흉내 낸 인공지능 로봇을 이른바 ‘철학적 좀비(Zombie Argument)’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원래는 심리철학 분야에서 활용되는 용어인데, 물리주의 또는 유물론을 비판하는 논변으로 사용된다. 이 논변에 따르면 ‘철학적 좀비’는 말 그대로 ‘감각질’은 없는 물리나 화학, 전기적 반응 등을 결합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감각 너머, 이 순간을 오롯이…
우리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육근, 六根)을 통해 세상을 파악하면서 살아간다. 때로는 그 감각에 사로잡혀 집착하기도 하고, 때로는 초연한 느낌으로 대하기도 한다. 정확히 그 범위만큼의 틀 안에서 우리는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첨단기술의 발전은 갈수록 가속도가 붙어가고, 그 기술은 인간의 물리적, 생리적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을 더욱 증장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눈으로는 메타버스와 같은 공간을 구현해서 볼 수 없었던 초월적인 세상을 볼 수 있게 하고, 몸으로도 현실 세계보다도 더욱 몰입감 넘치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인간은 그저 신기해하고 황홀감을 느끼며 만족해하면 되는 걸까. 기술은 이제 더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신체에 스며들어 인간 자체를 변형시키고 있다. 육체뿐만 아니라 본성마저도 바꿔놓고 있다.
이러한 첨단기술을 관세음보살의 천수 천안과 같은 자비행을 위한 방편으로 쓰일지 단순히 감각 능력의 확장을 통한 쾌락과 욕망 해소에만 활용될지는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 이제는 인간의 감각질마저도 인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고, 또 왜곡할 수도 있는 세상이다. 온통 자극적인 즐길 거리로 가득 찬 세상에서 때로는 감각기관을 잠시 쉬게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려는 수행과 정진이 없다면, 인간들은 철학적 좀비가 아니라, 사는 척할 뿐인 ‘진짜 좀비’가 되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